공격적 ·지능적· 창의적 경영 집합소 ‘삐꾸이웬’

2013년 봄. 중국 부동산 1위 삐꾸이웬(碧桂园) 양궈창(杨国强) 이사장과 중국 보험업계 1위
핑안보험 마밍저(马明哲) 이사장은 골프회동을 가졌다.

양궈창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핑안보험 자산은 조단위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자산을 관리하나요? 비법이라도 있습니까?”

마밍저는 대답했다.

“특별한 비법이랄께 있겠습니까. 사람을 잘 쓰는 거죠. 지난 몇 해를 되돌아보면 수천만위안 연봉을 주는 사람이 몇 명 있었네요. 그 사람들이 큰 일을 했지요”

골프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양궈창 이사장은 인력관리 총경리에게 전화를 해 지시했다. “내가 30억위안(한화 약 5000억원)을 줄테니 월급만큼 일할 사람 300명을 데리고 와라”

이 대화가 있기 전 삐꾸이웬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건설사 중지엔우쥐(中建五局)에서 스카웃해온 모빈(莫斌) 총재였다. 그는 양궈창의 딸이자 삐꾸이웬 회장인 양후이엔(杨惠妍)의 연봉 603.5만위안보다 높은 605.4만위안을 받았다. 3년후인 2016년 모빈 총재와 같은 회사인 중지엔우쥐에서 스카웃해온 리우선펑(刘森峰)은 비꾸이웬 최초의 억대연봉자가 됐다.

마밍저 이사장과 대화를 나누던 당시 432억이던 매출은 2016년 3088.4억위안으로 올라 삐꾸이웬은 부동산 업계 매출순위 3위를 기록했고 2017년 4월기준 4개월간의 매출만 2041.6억위안을 달성해 1위에 올라섰다.

매출 신장의 마술…정답은 ‘고액 연봉’

삐꾸이웬 양궈창 이사장.

마밍저 이사장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양궈창은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하지만 연봉을 많이 줘야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3년 당시 제너럴일렉트릭(GE)은 전 세계 석·박사들을 대거 모집해 인력을 보충했는데 여기에 영항을 받아 삐꾸이웬은 ‘미래 리더 플랜’을 내놨다.

전 세계 명문대학에서 박사를 초빙해 최고의 임금과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했다. 이런 파격대우는 당시 부동산 업계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 플랜으로 2016년 말까지 삐꾸이웬에 입사한 박사는 400여명이었고 2017년에는 새로 300여명의 박사를 더 채용했으며 200명정도가 해외유학파였다.

초빙한 박사들은 주로 전 세계 각 지역의 총재직을 맡거나 중국내 총경리 직을 수행했다.

경리급 인사들은 파트너 제도를 신설해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줬다. 프로젝트 베이스로 직원들과 계약해 월급 이외에 수익을 더 줬다. 이른바 ‘성취공유제도’였다.

삐꾸이웬은 2012년부터 이 제도를 실시해 2016년 6월 30일까지 총 319개의 프로젝트 수행했고 직원들과 이익을 나눠가졌다.

성취공유제도 첫 해인 2012년에는 8000만위안(한화 135억위안)을 가져간 사람이 있었는데 ‘0’이 하나 더 붙은게 아니냐고 총무과에 문의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이 있은 후 2013년부터는 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일을 하기 시작했고 2012년 476억위안이었던 삐꾸이웬 수익은 한 해가 지난 2013년 2배가 넘게 뛴 1050억위안을 찍게됐다.

원가를 낮추고 가치를 높여라

삐꾸이웬의 성공요인 중 또 다른 하나는 규모가 있는 부동산 설계의 표준을 여러 개 만들어 놓고 복제하는 것이다.

삐구이웬은 규모 있는 타운하우스의 설계를 수백개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이리저리 조합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 건설의 기본 설계를 단 하루만에 끝낸다. 그리고 토지 사용권을 취득한 후 며칠 만에 바로 공사에 들어간다. 여러 지역에서 같은 도면으로 동시에 공사를 진행하면서 설계과 시공, 판매마케팅을 동시에 할 수 있게 해 원가를 최대한 낮춘다.

이렇게 동시에 여러 지역에 같은 설계의 집을 지어놓게 되면 노후화되는 시기도 비슷해져 한번 더 업그레이드 할 때도 같은 방식으로 여러 지역에서 동시 시공이 가능하다.

또 공사 설계와 시공, 판매를 삐꾸이웬이 직접하거나 자회사를 통해 하면서 원가를 더 낮췄다. 건설비용이 많이 드는 고층 빌딩보다는 별장이나 타운하우스를 짓고 별장과 타운하우스
인테리어의 핵심인 원림회사를 만들어 직접 유럽식 정원을 꾸며줘 상품의 가치를 높였다.

건물이라는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끼워 팔아라

광동성에 있는 삐꾸이웬 안에는 국제학교가 하나있다. 1994년 지어진 이 학교는 ‘귀족학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삐꾸이웬이 처음 광동에 건물을 지어 팔 때 집 값을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현재까지 삐꾸이웬은 전국 7개성에 12개 국제학교, 11개 언어학교, 34개 유치원을 설립했다. 이들은 대부분 삐꾸이웬이 건설한 주택단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육+부동산’이라는 모델의 표준을 보여주고 있다.

집을 짓고 사람이 살게되면 가장 필요한 것은 학교과 병원인데 좋은 소프트웨어를 가진 학교와 병원을 설계해 부동산과 함께 파는 전략이 삐꾸이웬 성공의 큰 포인트가 됐다.
이후 많은 부동산 회사들이 삐꾸이웬의 이런 방식을 모방하기도 했다.

삐꾸이웬의 교육 사업은 부동산의 가치를 올리는 수단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학교자체의 사업성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6월까지 삐꾸이웬 교육그룹 브랜드인 보스러(博实乐)의 시장가치는 100억위안에 달했으며 2015년부터 2017년 상반기 까지 영업이익은 각각 7.46억위안, 10.4억위안, 6,.46억위안에 달했다.

학교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큰 요건인 진학률도 높다. 2017년 졸업생 216명 중 100%가 세계 각지 대학에서 입학통지서를 받았고 96%가 세계 100강 대학에 진학했다.

인기가 치솟고 영업이익이 높아지자 보스러는 지난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성공을 유지하는 마지막 포인트는 ‘겸손’

때로는 전략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으로 사업을 이어가며 오늘날의 삐꾸이웬을 만든 양궈창이 지금까지 회사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원인은 ‘겸손’이다.

그는 업계 다른 CEO들을 만날때 항상 “나는 농민이며 책을 많이 보지 못해 부족한 점이 많다”라고 먼저 운을 띄운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때는 “내가 틀릴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언어 습관은 너무나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기인한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 것도 없었던 농민이었던 나는 18살 이전에는 신발이라는것을
신어본적이 없고 23살까지 입었던 옷은 너무 많이 기워 덧대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그가 부동산 회사를 설립해 지금의 삐꾸기웬을 만들었고 2007년에는 홍콩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어린 시절처럼 가난한 사람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위기감속에 산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늘 회사가 파산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수천억을 가진 부자이지만 신을 신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야기를 지금도 하고 다니면서 그때를 잊으면 안된다고 자녀에게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