슝안에 담긴 철학, 다시 중국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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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관젠츠: 슝안

4월 1일 느닷없이 등장해 중국 대륙을 뒤흔든 슝안특구(雄安新区)는 여전히 베일에 가리워져 있다. 이미 중국 각종 미디어들이 분석, 평론을 쏟아내고 있지만, 계획만 발표된 상황이기에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슝안특구의 콘셉트는 7가지다.

  1. 녹색 스마트 도시
  2. 생태 환경 도시
  3. 높은 수준의 신산업 도시
  4. 양질의 공공 서비스 제공 도시
  5. 신속한 교통 도시
  6. 시스템 개혁 도시
  7. 전방위적 대외 개방 도시

이밖에 이렇다 할 청사진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현재 31개의 국영 기업이 슝안을 지지한다고 발표를 한 것 정도랄까.

국내에서는 ‘시진핑의 꿈’이란 타이틀로 중앙일보 차이나랩이 잘 정리해놨다. 그 내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덩샤오핑 시대에는 개혁개방(改革開放)과 흑묘백묘(黑猫白猫)가, 장쩌민 시대에는 3개대표론이,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는 조화(和諧)사회가 제창됐다면 시진핑 시대의 구호는 ‘중국의 꿈(中國夢)’이다. 시진핑이 얘기하는 ‘중국몽’은 과거 중국 공산당이 2050년까지 이룩하기를 원했던 ‘샤오캉(小康) 사회’가 결코 아니다. 그보다 원대하다. 바로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초일류국가다. 광활한 중국 영토에서 이를 구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수도 베이징 옆에 신구를 만들고 그곳에서 중국몽을 구현할 수는 있지 않을까? —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초일류국가를 향한 시진핑의 꿈(차이나랩)

슝안특구가 중국의 새로운 구심점을 하게 될 것이란 점은 명약관화하다. 1980년 덩샤오핑의 선전경제특구(深圳经济特区), 1990년 장쩌민(덩샤오핑의 청사진 아래 주롱지가 다 이끌긴 했지만) 시기의 상하이 푸동특구(浦东新区) 설립에 이어 27년만에 발표된 국가 주도의 세번째 특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장선에 슝안이 있는 것이고,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녹색 도시, 스마트 도시, 국제 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란 점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그림이다.

여기서는 그 이면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했던 이야기 또 하면 관젠츠를 할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중국의 현대 도시 발전의 세 가지 키워드

중국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개국 전후로 나뉜다. 1949년 이전을 ‘구중국’ 혹은 ‘해방전’이라고 하고, 이후를 ‘신중국’이라고도 한다. 신강철학사회과학왕(新疆哲学社会科学网)에 게재된 류쓰린(刘士林)의 ‘문화예술연구(文化艺术研究)’ 보고서에 따르면 신중국 설립 이후 도시는 3단계 형태의 전환을 이룬다. 정치 도시, 경제 도시, 문화 도시가 그 골자다.

(1)정치 도시화(1949~1978년)

1949 신중국 설립 당시 중국 인구의 평균 공업 총생산 가치는 86위안에 불과했다. 당시 인구는 5억4167만 명, 출생률은 36%, 사망률은 20%며 평균 수명은 35세였다. 먹고살기 힘든 시기였다.

당시 중국 정부가 도시를 개발하는 목적은 이러한 경제적 곤경을 극복하는 것에 있었다. 고대 중국의 도시는 정치 기반의 북방 수도와 강남(양쯔강 이남)의 경제 도시로 구분됐다. 정치 도시의 특징은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것보다는 분배의 측면이 더욱 강조됐다. 즉, 사회적 자산을 만드는 동시에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근대에 이르러 서구의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상공업(2차 산업)이 중국 경제 발달의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아편 전쟁과 국공내전 등 중국내외 전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냉전의 시기에까지 이르게 됐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정치야말로 중국 도시 발전의 핵심 역량이었다. 중앙 정부의 ‘인구의 군사화’로 표현되는 호적관리 제도 및 계획 경제 체제 하에 소비 및 생산성 도시가 구획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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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 수밖에 없던 요인은 신중국 성립 이후의 혼란했던 중국 내외 상황을 반영한다. 초기 정부는 냉전시대에 대처하는 중국 내부 정비 및 사회주의적인 경제 체제를 입혀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각 개인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도시가 기능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도시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아이러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공업화로 인해 기술인력과 공장들을 도시 밖으로 내모는 ‘역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경제적 수준이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1958년 2차 5개년 계획 시 구소련을 모방해 철강을 중심으로 한 공업 발전(以钢为纲)을 꾀했으나, 농업, 경공업의 침체, 상업을 등한시한 역효과가 났다.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관리형 도시의 한계를 체감하게 됐다.

신중국 설립 이후 새로운 정권의 유지를 위해 경제적인 압박을 줄이고,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는 건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2)경제 도시화(1978~2005년)

1978 개혁개방 이래 경제 발전은 중국의 가장 큰 정치적 요구 사항이 됐다. 경제 생산을 회복하고, 생산력을 높이는 것 역시 각 성의 중심 도시별 ‘신장정(新长征)’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985년 국무원은 지시를 내려 상하이 경제발전 전략 요점을 통보했다.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상하이를 더욱 발전시켜 중국 4대 현대화 건설의 개척자로 삼으며, 개방형, 다기능, 산업 시스템, 과학기술 선진, 고도 문명 사회주의 현대화 도시로 만들겠다. 상하이는 제3차 산업의 중심으로 경제중심의 역할을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외자, 해외 기술의 도입 관문이 될 것이다.”

상하이. 출처: 위키피디아

경제도시의 중심은 국내총샌산(GDP)과 큰 연관을 갖는다. 이 시기 도시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을 확립하게 되는데, 도시 경제와 개혁개방, 도시 비즈니스 및 서비스 기능의 전면적인 발달과 도시 인구의 신속한 확장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GDP는 4배가 증가하게 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공업 기반의 경제 발전에서 3차 산업으로 동력을 전환하게 된다. 이 시기 도시의 서비스업이 크게 발전하게 되는데, 호텔과 오피스빌딩이 곳곳에 세워졌으며 상업 서비스의 수준이 개선됐다. 특히 시장에서 통용되는 상품의 공급사슬이 이 시기 완성되며, 3차 산업의 영역인 부동산과 글로벌 금융, 정보통신 기업들이 떠올랐다.

주로 해안가의 도시들이 무섭게 성장했다. 상하이 푸동특구와 선전 경제특구가 모두 이 시기에 구축됐는데, 그 배경에는 해외와의 교역에 편리한 교두보로서 도시의 역할을 기대했던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선전. 출처: 위키피디아

허나 순기능만 있던 것은 아니다. 기업이 밀집됨에 따라 공급 과잉이 벌어졌고, 에너지 소비량이 급증했다. 공급량은 늘리되 제품의 원가는 낮추는 방향으로 경제가 발전하면서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됐고, 시장 생태계 파괴와 더불어 2차 산업의 역효과로 인한 환경 오염의 문제도 발생했다.

하얼빈시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 중 60%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허리와 등 통증, 기억력 감퇴 등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대기 오염으로 인해 매년 35만명이 호흡기 통증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물질적 발전(GDP)에만 집중한 결과다.

(3)문화 도시화(2005~)

2005 이후 나온 도시의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문화도시다. 정치 기반의 도시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도시 인구의 하락을 야기했다. GDP가 중심인 경제 도시 시기에도 각종 역효과가 발생했다. 이제는 도시자체의 브랜드와 퀄리티에 집중하는 시기가 시작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북경과 상해, 광저우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당시 각종 미디어들도 ‘행복’을 위해 도시를 탈출했다고 보도하곤 했다. 경제는 발전했으나,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도시였다.

중국이 추구하는 녹색 도시. 출처: http://www.58pic.com/

이에 따라 국무원은 ‘베이징시 전체 계획(2004–2020)’이라는 내용의 공식 발표를 했는데, 베이징의 발전 목표는 ‘국가 수도, 국제 도시, 문화도시, 살만한 도시(国家首都、国际城市、文化名城、宜居城市)’에 있었다. 그중 살만한 도시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이 시기에 등장했다.

이러한 형태의 도시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도시들이 축적한 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시가 과거 경제도시 시기 처럼 물질적인 축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의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방향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 슝안특구 발표가 있다.

(4)미래의 중국 도시는?

현재 중국 대륙을 가로지는 도시의 키워드를 축약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농촌을 대표하는 3~5선 도시와 대도시의 연결, 또 하나는 스마트도시다.

중국 정부는 3~5선 도시마다 약 4억~5억 위안(한화로 약 700억~880억 원) 수준의 금액을 지원해, 1~2선 도시의 유능한 인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농촌의 자원을 도시와 연결짓기 위해 이커머스 및 물류(알리바바 및 징동), SNS(위챗), 네트워크 인프라(화웨이) 등 IT 거두들을 집결시켜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스마트시티에 대한 투자도 계속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으로 설치된 이미지, 영상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도시의 범죄를 방지하고,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기반의 지불 체계로 인해 세수 파악 및 위폐 방지를 한다. 또한, 전기차 및 더 나아가 자율주행차를 도입하여 환경 보호를 꾀하려는 목적도 있다.

인구 6만에 불과한 저장성의 작은 도시 우전에서는 매년 인공지능 관련 콘퍼런스 및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다. 이 도시를 중국에서는 ‘인터넷 마을’이라 부른다. 도시의 정체성이 과학기술과 결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제부터 생겨날 신도시들이 3–5선 도시와의 연결성을 가지며 ‘스마트’가 결부된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20년의 중국을 이해하려면 선전, 200년은 상하이, 500년은 베이징, 1000년은 카이펑, 3000년은 시안을 가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중국에 전한다 — 책 ‘고찰명 : 중국 이야기’ 中

시안, 그러니까 당나라 시절 장안이라 불리우던 국제도시가 있었다. 책 ‘장안은 어떻게 세계의 수도가 되었나’에서 장안은 왕조의 철저한 계획 하에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당시 서양과 동양을 연결해주던 대표격 거점도시였으며, 종교, 문화, 기술, 정치의 중심이었다. 세계 최강의 국가였던 중국의 상징성은 장안에 있었다.

장안시를 복원한 모습. 출처:플리커 https://flic.kr/p/aitmaJ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전후로 세계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내몰리며, 국제도시라는 위상도 동시에 잃었다. 그러던 중국이 다시 한 번 굴기하고 있다. 1980년 선전을 통해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1990년 상하이 푸동 특구를 통해 현대판 글로벌 도시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리고 2017년 슝안특구가 발표됐다. 슝안에는 부동산 문제, 글로벌 기업과 자본의 진입 등, 여러가지 의미도 내포돼 있을 것이다.

허나 이면에는 당나라 시대에 전세계 문물이 장안에 모여들었듯, 다시 한 번 슝안으로 몰려들게 되는 그림이 담겨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